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모터쇼. 특히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독일 완성차 메이커들이 중심이 된 만큼 기술적 측면이 강조된 ‘테크니컬 쇼’로 평가받는데요. 디젤차, 전륜구동차, 안전벨트 등 자동차의 내일을 바꾼 기술이 이곳에서 최초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자동차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로 더 익숙한 IAA의 정식 명칭은 국제자동차전시회(IAA, International Automobil-Ausstellung)입니다. 주최 측인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1951년 이후 70년 만에 IAA의 개최지를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으로 옮겼습니다. 또, ‘IAA 모빌리티’로 공식 명칭도 새롭게 바꿨습니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변신에 전문가들은 IAA 모빌리티 2021을 ‘내연 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이 모빌리티 산업으로 재편되는 상징적 이벤트’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독일자동차산업협회는 왜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사실 모터쇼의 변화는 오래전부터 요구된 일입니다. 전동화, 자율주행 등 자동차 기술의 첨단화에도 불구하고 기존 모터쇼는 단순히 신차를 소개하는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따라서 업계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를 포착한 것이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 ‘CES’입니다.
자동차와 IT 산업 간 융합에 주목한 CES는 2007년부터 자동차 관련 부스를 마련하고 자동차 산업의 미래 발전 방향을 소개했습니다. 완성차 업체로선 CES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CES의 미래지향적인 성격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됐죠. 또한 IT 업계와의 시너지를 내기에도 유리했습니다. 그 결과, 모터쇼 대신 CES를 선택한 업체가 늘어났는데요. 자동차 부품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CES2020에 참가한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201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보면서 '이제 자동차 전시회는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과거에 멈춰있는 모터쇼와 달리 CES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죠.
결국, 2017년에는 볼보, 지프, 푸조 등 9개 브랜드가 2019년에는 르노와 닛산, 토요타, 제너럴 모터스 등 일본과 미국의 주요 브랜드가 추가로 불참하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참가기업의 수는 예년 대비 20% 감소했는데요. 관람객의 실망이 이어지며 2017년 81만 명에 달했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관람객 수는 2019년 절반 수준인 56만 명으로 감소했습니다.
탄소 중립 역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개혁에 불을 지폈습니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여론이 확산되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형성됐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00여 년간 핵심 교통수단으로 활약한 내연기관 자동차가 퇴출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2025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2030년에는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에서 2035년에는 EU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가 중단될 예정인데요. 하루라도 먼저 미래차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 역시 친환경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볼보는 오는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 기업으로 전환을 밝혔으며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 시장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70%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자동차산업협회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지 않는다면모터쇼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형성됐죠. 이는 ‘이동성이라는 큰 틀에서 모터쇼가 열려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가 됐습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는 IAA 모빌리티 2021의 주제를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모빌리티의 길’로 선정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참여 업체도 다변화됐습니다. 98개 완성차 업체와 75개의 자전거 브랜드, 152개의 부품 납품업자 등 전 세계 744개 업체가 참여하여 자리를 빛냈는데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모터사이클, 자전거 드론 등 과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보기 힘든 이동 수단을 대거 전시하며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유럽의 대표적인 IT 거점이자 스마트 시티로 불리는 개최지 '뮌헨'의 특색을 반영하여 도시 곳곳에 첨단 교통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는 구간을 설치하고 시민들이 미래 모빌리티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흥미로운 조합에 업계는 ‘앞으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미리 볼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며 시작 전부터 높은 기대를 보냈는데요. 9월 7일부터 6일간의 대장정이 끝이 난 지금, 평가는 엇갈립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 40만 명이 참여했다며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 진행을 반대하며 비폭력 시위에 나선 환경· 교통단체를 경찰이 최루액과 곤봉으로 진압하여 논란이 됐으며,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와 푸조, 토요타 등이 참가하지 않아 전시회의 규모는 50만 명이 참가한 2년 전 수준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통과 혁신의 갈림길에서 가장 먼저 혁신을 택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과연,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 스위스 제네바, 일본 도쿄 등 자동차 강국이라 손꼽히는 국가의 대형 모터쇼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그 변화에 귀추가 주목됩니다.